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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베리아 횡단열차를 타는 배낭여행객들은 주로 블라디보스토크에서 모스크바까지 가는 직행을 탄다. 기차에서만 7일이 걸리는 코스이다. 그래서 대부분의 후기는 ‘지루하다’는 평이 많다. 이런 후기를 많이 본 것도 있고, 여행할 수 있는 시간도 많은 나는 러시아 중간지역의 도시들을 방문하기로 했다. 각 도시마다 2박 3일 정도 머물렀는데, 최소 7일을 머물러야 각 도시의 특성을 조금이나마 느낄 수 있는 것 같다.
그래서 나의 최종 시베리아 횡단열차 루트는
블라디보스토크-이르쿠츠크-노보시비르스크-예카테린부트크-카잔-모스크바-상트페테부르크
이다. (*모스크바-상트페테부르크 구간은 우리가 아는 시베리아 횡단열차 코스는 아니다.)
2018년 9월 2일 일요일, 오전
여느 다름없는 9월의 산뜻한 아침을 맞이했다. 다른 점이라곤 기차 안이라는 점이다. 흔들리는 기차 안이어서 어지럽거나 머리가 아플까 싶었는데, 그러진 않았다. 내가 탄 기차는 가장 오래된 연식의 열차다. 화장실도 무궁화호보다 한 단계 아래정도라 보면 되고, 내부 소음도 심하고 그랬다. 그렇다고 못 탈 수준은 아니다. 인간은 적응의 동물이니, 적응만 하면 된다.
벌써 적응을 했을까, 배가 고프다. 팔도 도시락 라면의 나라, 러시아가 아니겠는가! 블라디보스토크에서 맛 종류별로 챙겨 총 6개 챙겨 왔다.. 뜨거운 물을 받으러 제일 앞 칸 차장실 옆 정수기로 향했다. 가는 건 문제가 아닌데, 펄펄 끓는 물을 받고 돌아오는 길이 고역이었다. 뜨거운 라면용기, 흔들거려 뚜껑 사이로 흘러내리는 뜨거운 물 한 방울, 두 방울이 손에 닿았다. 어렵사리 물을 떠 오자,, 맞은편에 있던 러시아 형들도 배가 고팠는지 하나둘씩 도시락을 꺼내기 시작했다. 그 형들만 꺼낸 게 아니라 복도를 지나가는 사람들 마다 손에 도시락이 들려있었다. 기차는 라면수프 냄새와 라면의 증기로 가득 차기 시작했다.
후끈하다. 이것이 바로...국경을 넘어선 시대 대통합...!은 아니고, 라면은 어디를 가나 인기식품임에 틀림없다.
맞은편에 앉은 러시아 형님들은 특이하게 라면에 마요네즈 몇 스푼 넣고, 투박한 맥가이버 칼로 말린(?) 소시지를 송송 썰어 넣어 먹는다. 많은 열량을 섭취해야 추운 지역에서 살아남는 게 아닌가 싶다.
열기 가득한 점심시간이 지나고 나니 밖에 풍경들이 눈에 들어왔다. 때가 탄 창문 너머로 희미하게 보이는 자연풍경들은 끊임없이 변했다. 작은 집들이 보이다가 시베리아 들판에 심어진 무수한 침엽수들이 펼쳐지기도 한다. 생소한 풍경들로 변할 때마다 매번 신기할 뿐이다. 같은 칸에 있는 러시아인들은 너무나 익숙한 나머지 무표정으로 바라보고만 있다.
오랜 시간이 지나 노을이 지기 시작했다. 노을빛과 창문에 묻은 회색 때와 색이 섞여 누런빛이 기차를 비추었다. 90년대 얘기로만 듣던 칙칙한 소련의 분위기를 알 수 있었다. 지는 노을과 함께 저녁을 먹고 일찍 잘 준비를 했다.
불규칙적으로 ‘덜-컹, 덜-컹’거리는 기차의 소리와 흔들림은 잊지 못할 자장가였다.
(Tip)
*러시아 시베리아 횡단열차에서 생활할 때 여러모로 시행착오가 있었다. 고무소재의 슬리퍼나 샌들을 들고 가 실내화처럼 신는 것을 추천한다.
*음식은 열차 내에서 차장님 실에서 판매하기도 하지만, 행선지 중간에 정차하여 휴식을 가진다.(실은 다른 사람들이 내리고 타는 시간이다.) 그때 매점에 가서 식음료를 살 수 있다.
*물 같은 경우는 따뜻한 물이 항상 제공되므로 보온병을 꼭 챙겨가 러시아인들과 같이 홍차를 즐기는 것도 하나의 묘미다.
*오래된 차량은 샤워칸이 없다. 그래서 양치, 세수, 발 씻기, 머리 감기(짧은 머리스타일 한정)만 가능하다. 특히 머리를 감을 때 나는 500ml 페트병에 수돗물을 담아 감았다. 뭐 나름 감겨서 상쾌하게 잠을 잘 수 있었다. 그리고 발을 씻기가 어려울 수 있어, 주로 물티슈로 손발을 닦곤 했다. 신형차량을 타면 이런 고생을 덜 할 수 있으니, 예매 가능한 기차를 잘 보고 잘 예매하는 게 제일 좋다. (신형은 샤워칸이 있어 일정금액을 내고 사용이 가능하다. 내가 갔을 때 150 루블 정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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